현황분석

위치도 및 교통체계


사업예정지 주변현황


천마산 보광사 소개


천마산 보광사 연혁

천마산 보광사 관련 인물





person 화담 경화(1786~1848)


  • bookmark 조선후기 『천지팔양신주경주』, 『게송육십칠품』 등을 저술한 승려
  • bookmark 18세에 출가하여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월화(月華)의 제자가 됨
  • bookmark 율봉(栗峯)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화악지탁(華嶽知濯)의 법통을 이음
  • bookmark 말년에 현등사를 열반처로 정하고 보광사에서 입적
  • bookmark 법맥은 서산-편양-환성-함월-화악-화담으로 이어지는 전통승 계보


person 보월 혜소 대선사


  • bookmark 삼봉집에 실린 화담스님의 제자 중 수법제자
  • bookmark 고려 개국 공신 풍양 조씨의 시조인 조맹의 후손 (보월 혜소∙봉성 서린)
  • bookmark 보월 혜소스님은 옹사(翁師) 화악 지탁(華嶽知濯)에 이어 스승인 화담 경화선사 진영에 찬문을 지음
  • bookmark 1869년 화악스님의 시문집인 <삼봉집>을 간행하면서 뒤편에 화담스님의 비명, 영찬, 행장을 수록해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림
  • bookmark 삼봉집에 의하면 ‘보광사의 대중 승려가 170여명’ 이란 기록이 있다.


person 추사 김정희(1786~1856)


  • bookmark 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실학자· 서화가
  • bookmark 불교와 연이 깊고 많은 불경을 섭렵했으며,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당대 고승들과 고증학적 안목으로 논쟁함.
    백파긍선(白坡亘璇)ㆍ화담과 초의 선사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말년에는 봉은사로 삭발 출가 정진하여 선지식 반열로 대접을 받았다.
  • bookmark 보광사 주변에 김정희의 암각문 3점과 귤산 이유원의 암각문 10점등 13점 의 암각문이 산재해 있다.
    봉선사의 스님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운허스님이 석전스님에게 받은 법물인 족자에 ‘석전’이라 쓰고 전한 사연이 있다.


person 귤산 이유원(1814~1888)


  • bookmark 조선후기 함경도관찰사, 판부사, 공조판서, 한성판윤을 고종대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백사 이항복의 9대 정손이다.
    독실한 신심으로 천마산 보광사를 대대적으로 중건하고 원찰로 삼음.
    귤산은 꿈에 관세음보살의 현몽을 받고 현몽만회암을 짓고 장자 이석영과 화도읍 가곡리 향리에 살며 집필에 전념하였다.
  • bookmark 저서로는 『임하필기(林下筆記)』ㆍ『가오고략(嘉梧藁略)』ㆍ『귤산문고』 등을 남겼으며 예서에 능했다.


person 보광사 주지 봉성 서린과 이석영(1855~1934)

이곳은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마련한 곳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며 민족의 토대를 놓은 곳이다!

  • bookmark 보광사 주지 봉성 서린스님과 이유원의 장자 이석영은 친분이 두터웠다.
  • bookmark 1908~1909년 봉성 서린스님은 보광사의 토지와 절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현금 이십만 원을 마련했다.
    서린스님과 함께 이석영은 이유원으로 부터 물려받은 전 재산을 처분한 현금 이십오만원을 마련해 독립군 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서간도로 망명,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상해 임시정부 건물을 매입하여 기증하였다.
    (이 사실은 우당 이회영의 장손 전 국정원장 이종찬의 증언이다. 2019. 9 .7) 독립운동 자금 등으로 재산을 다 쓴 이후 이석영은 중국 각지를 홀로 떠돌아다니다 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Copyright 2022 © 대한불교조계종 보광사